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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 지석묘(만안구 평촌대로 43 평촌자유공원 내)
자유공원 지석묘는 평촌신도시 개발을 위한 발굴조사 중 평촌, 귀인, 신촌, 갈산마을 일대에서 발견된 13기의 지석묘 중 5기를 현재 위치인 평촌자유공원 내에 이전·복원한 것을 말합니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구조에 따라서 탁자식(북방식), 기반식(남방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으로 나뉘는데, 조사된 지석묘군은 땅 밑에 무덤방을 만들고 위에 괸돌과 덮개돌을 올린 개석입니다. 덮개돌 주변과 무덤방 인근에서 출토된 유적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구조에 따라서 탁자식(북방식), 기반식(남방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으로 나뉘는데, 조사된 지석묘군은 땅 밑에 무덤방을 만들고 위에 괸돌과 덮개돌을 올린 개석입니다. 덮개돌 주변과 무덤방 인근에서 출토된 유적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염불사 부도군(만안구 예술공원로 245번길 150)
부도는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시설물로 염불사 부도군은 조선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석종형 부도 3기와 마애부도 2기를 말합니다.
석종형 부도는 종 모양으로 만든 부도로 부도 탑신에 세로로 길게 음각하여 쓴 당호가 있어 부도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데, 왼쪽부터 순서대로 도일당부도(道日堂浮屠), 인봉당부도(印峯堂浮屠), 서영당부도(西影堂浮屠)입니다.
마애부도는 암벽에 새긴 부도로 염불사 동남쪽 선방 부근 뒤쪽 암벽에 있으며, 현진당 마애부도와 여산송씨 마애부도가 있습니다.
석종형 부도는 종 모양으로 만든 부도로 부도 탑신에 세로로 길게 음각하여 쓴 당호가 있어 부도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데, 왼쪽부터 순서대로 도일당부도(道日堂浮屠), 인봉당부도(印峯堂浮屠), 서영당부도(西影堂浮屠)입니다.
마애부도는 암벽에 새긴 부도로 염불사 동남쪽 선방 부근 뒤쪽 암벽에 있으며, 현진당 마애부도와 여산송씨 마애부도가 있습니다.
안양사 부도(만안구 예술공원로 131번길 103)
안양사 부도는 안양사 대웅전 앞에 안양사 귀부(경기도 유형문화유산)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사리를 안치하였을 몸돌과 중간 받침돌(중대석)은 사라지고 아래 받침돌(하대석)과 위 받침돌(상대석), 지붕돌(옥개석)만 남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평면이 팔각형인 팔각원당형 부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양사 부도의 모양과 조각 기법을볼 때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안양사 귀부와 연관된 승려의 승탑으로 추정됩니다.
사리를 안치하였을 몸돌과 중간 받침돌(중대석)은 사라지고 아래 받침돌(하대석)과 위 받침돌(상대석), 지붕돌(옥개석)만 남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평면이 팔각형인 팔각원당형 부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양사 부도의 모양과 조각 기법을볼 때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안양사 귀부와 연관된 승려의 승탑으로 추정됩니다.
삼막사 삼귀자(만안구 삼막로 478)
삼막사 삼귀자는 바위벽(岩壁)을 반듯하게 다듬어 각기 모양이 다른 ‘거북 귀(龜)’ 3글자를 새긴 것입니다.
삼귀자 옆에는 부처님의 제자 지운영이 꿈에 관음에게서 오래 살게 해준다는 뜻이 담긴 ‘귀(龜)’자를 받아서 1920년에 쓴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지운영(池雲英, 1852∼1935)은 조선 말기에서 근대 초기에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불린 인물로,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의 형이며 지운영이 삼막사에 머문 1920년 무렵에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귀자 옆에는 부처님의 제자 지운영이 꿈에 관음에게서 오래 살게 해준다는 뜻이 담긴 ‘귀(龜)’자를 받아서 1920년에 쓴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지운영(池雲英, 1852∼1935)은 조선 말기에서 근대 초기에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불린 인물로,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의 형이며 지운영이 삼막사에 머문 1920년 무렵에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막사 감로정 석조(만안구 삼막로 478)
석조는 돌을 파서 물을 받아 두고 쓰는 큰 그릇을 말합니다. 감로는 감미로운 이슬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삼막사 감로정 석조는 거북이 모양을 한 석조로 옆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837년(헌종 3)에 여러 명이 시주하여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고, 덮개석은 3매의 판석으로 1979년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삼막사 감로정 석조는 거북이 모양을 한 석조로 옆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837년(헌종 3)에 여러 명이 시주하여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고, 덮개석은 3매의 판석으로 1979년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관양동 청동기 유적(동안구 관양동 1793-2)
관양동 청동기 유적은 1999년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알려졌고, 2000~2002년에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시대 집자리(住居址) 8기와 다양한 형태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 간돌칼, 반달모양 돌칼, 갈판 및 갈돌,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집자리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3호, 4호 집자리를 발굴구역 바로 인근의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출토된 유물은 안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석기는 한반도 중부지역 청동기시대의 ‘역삼동 유형’에 해당하며, 유적의 연대는 청동기시대 전기 후엽으로 추정됩니다. ‘역삼동 유형’은 1966년 서울 역삼동에서 조사된 긴네모꼴 평면의 집자리 유적과 출토된 민무늬 토기, 반달모양돌칼 등의 조합을 말하며,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합니다.
관양동 청동기 유적은 청동기시대 안양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집자리 유적이며, 안양이 오랜 과거부터 살기 좋은 지역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집자리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3호, 4호 집자리를 발굴구역 바로 인근의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출토된 유물은 안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석기는 한반도 중부지역 청동기시대의 ‘역삼동 유형’에 해당하며, 유적의 연대는 청동기시대 전기 후엽으로 추정됩니다. ‘역삼동 유형’은 1966년 서울 역삼동에서 조사된 긴네모꼴 평면의 집자리 유적과 출토된 민무늬 토기, 반달모양돌칼 등의 조합을 말하며,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합니다.
관양동 청동기 유적은 청동기시대 안양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집자리 유적이며, 안양이 오랜 과거부터 살기 좋은 지역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안양일소리
안양의 향토민요는 1991년, 1993년 당시 문화재관리국 전문위원 등에 의해 안양 토박이 어르신을 중심으로 논농사요, 채석노동요 등이 조사되었고, 2019년에 채석장 일소리, 논농사소리, 집 짓는 소리, 집안일 소리를 ‘안양일소리’로 하여 향토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채석장 일소리는 석수동 산11-1번지 일대(현재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 뒤쪽 산)에서 불리던 채석장 종사자의 노동요로, 석산에서 돌을 캐어내는 과정과 캐어낸 돌을 옮기는 과정, 옮겨진 돌을 용도에 따라 다듬어 축대석, 주춧돌 등으로 쓰여지는 과정을 엮어 채석요-대꼬질소리-목도소리-지경닺이-고사소리(지경소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논농사 소리는 가래질, 모찌기, 모심기 등의 논농사 과정에서 불리던 노동요로 느린 방아타령, 꽃방아타령, 양산도, 방아타령 등이 있습니다. 논농사 소리는 전통적 토박이 소리의 지역적 특징을 알 수 있는 긴요한 소리로 안양 일소리의 논농사소리는 한강 이북 경기 서부 지역의 논농사 소리와 깊은 관련성을 보이면서 안양지역의 독자적인 소리의 갈래와 선율적인 지역 유형이 발현되고 있습니다.
채석장 일소리는 석수동 산11-1번지 일대(현재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 뒤쪽 산)에서 불리던 채석장 종사자의 노동요로, 석산에서 돌을 캐어내는 과정과 캐어낸 돌을 옮기는 과정, 옮겨진 돌을 용도에 따라 다듬어 축대석, 주춧돌 등으로 쓰여지는 과정을 엮어 채석요-대꼬질소리-목도소리-지경닺이-고사소리(지경소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논농사 소리는 가래질, 모찌기, 모심기 등의 논농사 과정에서 불리던 노동요로 느린 방아타령, 꽃방아타령, 양산도, 방아타령 등이 있습니다. 논농사 소리는 전통적 토박이 소리의 지역적 특징을 알 수 있는 긴요한 소리로 안양 일소리의 논농사소리는 한강 이북 경기 서부 지역의 논농사 소리와 깊은 관련성을 보이면서 안양지역의 독자적인 소리의 갈래와 선율적인 지역 유형이 발현되고 있습니다.
안양만안답교놀이
답교(踏橋)놀이는 정월 대보름날 다리(橋)를 밟고(踏) 노는 세시풍속의 하나입니다. 밟는 행위는 놀이적 또는 신앙적 행위로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체적 정신을 함양하면서 한해의 풍년 기원과 재난을 일소하고 탈 없이 한 해를 보내고자 하는 소망은 물론 구조물인 다리(橋)와 사람의 다리(脚)의 발음이 같아 다리를 밟으면 다릿병이 생기지 않거나 낫게 하려는 민간 신앙심이 담겨 있습니다.
1987년 안양문화원의 실태조사를 통해 호계지역과 만안교 지역에서 답교놀이가 성행하였고,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식민 착취에 따라 경제적 여유가 점차 없어지면서 1920~1930년대에 사라졌던 것을 원로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호계지역 답교놀이와 만안교지역의 답교놀이를 만안교를 중심으로 복원한 것이 만안답교놀이입니다.
현재 안양만안답교놀이는 매년 정월대보름 전 토요일에 1987년에 복원된 내용을 바탕으로 놀이 장소인 만안교(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의 상황에 맞춰 길놀이-다리밟기-무동놀이-선소리꾼놀이-대동놀이 순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1987년 안양문화원의 실태조사를 통해 호계지역과 만안교 지역에서 답교놀이가 성행하였고,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식민 착취에 따라 경제적 여유가 점차 없어지면서 1920~1930년대에 사라졌던 것을 원로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호계지역 답교놀이와 만안교지역의 답교놀이를 만안교를 중심으로 복원한 것이 만안답교놀이입니다.
현재 안양만안답교놀이는 매년 정월대보름 전 토요일에 1987년에 복원된 내용을 바탕으로 놀이 장소인 만안교(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의 상황에 맞춰 길놀이-다리밟기-무동놀이-선소리꾼놀이-대동놀이 순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리산산신제
산신제는 산신에게 올리는 제의로 그 역사는 고대사회 제천의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형학적으로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산에는 신령이 있고 초능력적인 영험력을 발휘한다고 믿어 산을 숭배해 왔습니다.
수리산산신제는 단절된 전통문화에 대한 맥과 정신을 잇고 국태민안과 안양시의 발전,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수리산을 진산으로 매년 4월 마지막 주 일요일을 제일로 하여 올리는 제의입니다. 제의는 유교식 제례와 무교식 제례인 굿거리가 행해지는데, 굿거리는 경기굿의 구조와 흐름에 따라 부정청배-가망청배-산신거리-불사거리-가망·말명·대신거리-장군거리-별상거리-신장거리-대감거리-창부거리-계면거리-뒷전거리 순으로 진행됩니다.
수리산산신제는 공동체 의례로서 대동성과 경기굿의 연행, 전승 단체의 전승 노력 등에서 지역 민속문화로 보전 및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2023년 조건부 지정되었습니다.
수리산산신제는 단절된 전통문화에 대한 맥과 정신을 잇고 국태민안과 안양시의 발전,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수리산을 진산으로 매년 4월 마지막 주 일요일을 제일로 하여 올리는 제의입니다. 제의는 유교식 제례와 무교식 제례인 굿거리가 행해지는데, 굿거리는 경기굿의 구조와 흐름에 따라 부정청배-가망청배-산신거리-불사거리-가망·말명·대신거리-장군거리-별상거리-신장거리-대감거리-창부거리-계면거리-뒷전거리 순으로 진행됩니다.
수리산산신제는 공동체 의례로서 대동성과 경기굿의 연행, 전승 단체의 전승 노력 등에서 지역 민속문화로 보전 및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2023년 조건부 지정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