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의 기억
고대 인류의 삶의 근거지, 안양
안양천은 선사시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물과 풍족한 먹거리로 안양천은 고대 인류의 삶의 근거지 역할을 해왔으며, 관양동 지역에서 수습된 다양한 석기들과 청동기 시대 유적인 평촌동의 지석묘, 관양동의 주거 유적지를 통해 당시 안양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 관양동 주거 유적지
- 평촌동 지석묘
안양, 불교 문화를 품다
안양이란 불교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의 세계를 말합니다.
안양(安養)이란 지명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 安養寺)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신라 효공왕 4년(900)에 왕건이 금주(시흥)와 과주(과천)등의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산꼭대기의 구름이 오색으로 물든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살피게 되었습니다. 구름밑에서 능정(能正)이란 노스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왕건의 뜻과 같으므로 석수동 안양유원지 일대에 안양사를 창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안양천은 신라시대와 고려를 거치며 중초사와 안양사 등 불교문화의 근원지를 품에 담아 왔습니다.
- 안양사 전경
- 중초사지 당간지주
- 석수동 마애종
정조의 꿈과 효심이 깃든 만안교
조선 22대 왕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화성으로 옮기고 자주 찾았으며 행차 때마다 임시로 나무다리를 놓는 것이 관례였으나 다리 설치를 번거롭다 생각한 정조의 명에 따라 만안교가 건설되었습니다. 만안교(萬安橋)는 만년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안양천의 변천사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안양천은 지금과 달리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흘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대동여지도
- 1760년
- 1860년
- 1964년
- 1966년
- 1976년
- 1979년
- 1981년
- 1986년
- 1990년
- 1992년
- 1997년
1960년대 이전의 안양천
1960년대 안양천은 자연스러운 물길에 의해 발생한 굴곡 있는 사행하천으로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터로, 어머니가 빨래를 하던 빨래터로, 마을 사람들의 목욕터로, 그렇게 고마운 삶의 터전이 되어 주었습니다.
- 1968년 삼성천 안양유원지
- 1960년대 수암천
- 1960년대 안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