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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3동은 조선 시대에는 과천군 하서면 후두미동이었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가 되었다. 그 후 1941년 10월 1일 제253호에 의거 안양면 안양리로 개칭되었고, 이어 1949년 8월 15일 대통령령 제162호에 따라 안양읍 안양리라 했다가, 1964년 1월 1일 안양읍 안양3리로 된 후 1973년 7월 1일 법률 제2597호에 따라 시제가 실시되면서 안양3동이 되었다.
1989년 5월 1일 시 조례 제931호에 따라 만안출장소에 편제되었고, 이어 1992년 10월 1일 내무부 승인 제892호에 따라 만안구에 편제되었다.
안양3동은 1837년 7월경에 우리나라의 두 번째 신부로 알려진 최양업의 부친 최경환이 수리산의 영봉인 태양산 아래에 정착하여 안양은 물론, 인근의 의왕, 안산, 군포, 시흥 지방에 천주교를 잉태시켰으며, 1928년에는 엄기성이 안양3동 사무소 부근에 안양 최초의 회사인 안양 산업사를 설립하였고, 4년 후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조선 직물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안양공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광복 직전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아시아학교가 설립되었다가 광복이 되자 폐교된 후, 안양공고가 세워졌고, 그 후 안양서초등학교, 안양예고, 안양여상, 안양과학대, 안양외고 등 교육 시설이 속속 설립되어, 안양교육의 요람지가 되었다.
안양3동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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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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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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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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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