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복지센터

박달1동은 조선 시대에 금천현 현내면 박달리였다가 제22대 정조 때(1795년) 만안교를 가설한 후, 시흥현 현내면 박달리로 되었다가 고종 때(1895년) 시흥군 군내면 박달리로 개칭되었다.
본래 박달1동주민센터 일대는 먹해들이라고 불렀는데 박토여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37년경 박달2동 붓골 살던 권공선(시흥시 신현동 출신으로 알려짐)이 평양 육군병기창 안양분창 건설로 마을이 폐동되자, 농사를 짓기 위해 지금에 박달1동주민센터 부근에 처음으로 정착한 후 일제 말엽부터 차차 민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달1동은 서안양의 중심동 역할을 하는 경제교통의 중심지로 단독주택과 소규모 공동주택의 밀집 주거 지역이지만 상대적으로 낙후지역이 잔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