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복지센터
지명유래 〉수푸루지(林谷洞)
비산사거리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깊은 골짜기에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고을이라 하여 수푸루지라 불렀습니다. 또 마을 앞으로 안양천. 임곡천과 같은 하천이 흐른다고 하여 수풀내라 부르기도 합니다.
1978년 대림대학이 들어서면서 시가지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 2일 평화보육원 동쪽에 있는 당봉 꼭대기에서 산신제를 지냅니다.
산제당
우리 고장 전설 〉망해암(望海岩)
신라 원효대사가 절을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망해암」은 안양시가지는 물론 멀리 서해바다까지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습니다.
1조선 세종 임금 때 세금으로 받은 남쪽 지방의 곡물을 뱃길을 따라 한양으로 운반하였습니다. 인천앞 바다 팔미도 부근을 지날 무렵 몹시 심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힐 지경에 이르렀답니다. 뱃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고 있을 때 뱃머리에 한 스님이 나타나 그대들은 너무 당황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라 하며 뱃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인도하여 무사히 위기를 넘겼습니다.
풍랑이 잠잠해지자 한 뱃사람이 스님에게 어느 절에 계시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은 관악산 망해암에 있다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뱃사람 일행이 한강까지 무사히 닿은 뒤 생명의 은인인 스님을 찾아 망해암에 가 보았지만 그런 스님은 계시지 않았으며, 법당 안에 그 용모와 모습이 흡사한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이 구해 주신 것이라고 임금님께 아뢰었습니다. 이를 들은 임금님은 매년 망해암에 한 섬씩 공양미를 불전에 올리도록 분부하셨습니다. 이 공양미는 400년간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고장의 국가유산(비지정) 〉비산동 1·2호 석실분(石室墳)
비산동 상수도사업소 비산정수장 서북쪽 능선 150m에 위치한 석실분으로 자연개석을 이용하여 하부를 판 후 편마암의 깬 돌을 이용하여 석실을 축조하였습니다. 서벽은 심하게 파괴되었으며, 동·북벽은 자연 암반을 다듬어 이용한 것이 특이하며 우리 지역의 옛 묘제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석실분1호
석실분2호